서원사(西願寺) 연혁
서원사는 1982년 3월 10일 효란(曉鸞) 큰스님께서 거주하시던
조그마한 가정집을 개조하여 본원포교원(本願布敎院) 서원사로 개원하였습니다.
처음엔 어린이법회를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하여 중고등학생회, 청년회, 일반 신도회 등을 구성하여
전수염불을 통한 신앙생활 고취에 진력하였고, 초기의 서원사에는 세계 각지의 고승들이 방문하여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대한 법문을 설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효란스님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미국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정토신앙에 대한 가르침을 전파하였고,
올바른 염불신앙이 우리나라에 정착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많은 유학생을 일본으로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1985년 서원사 옆 주택을 2채 매입하였고, 1998년에 3층 건물로 재건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서원사의 서원(西願)이란 서방정토에 계신 아미타부처님의 48원을 말하며,
그 본원(本願)을 믿고 염불하는 전수염불(專修念佛)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서원사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칭명염불만으로 극락왕생하여
부처가 되고자 하는 염불도량으로 참선(參禪)이나 진언(眞言) 및 다라니,
그리고 간경(看經) 등의 수행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또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는 여래정토의 인과와 중생왕생의 인과를 설하신 정토삼부경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란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을 말합니다.
서원사의 신앙적인 근간은 원효스님의 일심정토사상과 일본 정토진종(淨土眞宗) 신란스님의 교학을 중심으로 하는 타력염불에 두고 있으며,
본존불 양쪽으로 원효스님과 신란스님의 목상(木像)을 안치하고 있습니다.
서원사는 석존의 가르침인 정토문(淨土門), 즉 쉽고 빠른 이행도(易行道)로 가는 순수타력 구제를 앙신(仰信)하는 도량으로
철저하게 자력(自力)을 내려놓고 오로지 불력(본원력本願力)에 의해 성불하고자 하는 도심 속 염불도량입니다.
또한 효란스님의 유지가 담겨져 있는 곳으로 효란스님의 염불신앙의 시작과 마지막으로 효란스님이 열반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열반하신 당일(2013년 3월6일) 아침 주지인 성진스님이 외출인사를 올릴 때 곧 극락왕생하심을 예견하시고
외출하고 돌아와도 더 이상 볼 수 없음을 말씀하셨는데,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평생 효란스님을 시봉하신 서원화보살님 앞에서 앉은 그대로 좌탈입망 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의 유래(由來)
현재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長野懸 長野市) 모토요시쵸(元善町) 491번지에 위치한 선광사(善光寺)는 일본 최초의 고찰(古刹)로서
그곳에 모셔져 있는 본존불을 일본에서는 선광사여래(善光寺如來)라고 부른다.
이 선광사여래는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로 백제의 성왕이 일본으로 봉송(奉送)할 때에는 석가불금동상(釋迦佛金銅像)이라고 불리었는데,
이 불상은 삼국시대에 전래한 부처님으로 천축인 인도에서 한반도에 비래(飛來)하시었고,
또 일본으로 직접 가신 부처님으로 이에 대한 유래와 연기(緣起)는 다음과 같다.
석가세존께서 재세시 법체 67세 때 동인도 비사리국(毘舍離國) 암라수원(菴羅樹園)에 있는 대림정사에서 여러 사부대중을 모아 놓으시고
설하신 청관세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주경(請觀世音菩薩消伏毒害陀羅尼呪經)에 일광삼존아미타불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유래와 연기에 대하여 잘 나타나 있는데,
이 경전을 간략히 청관세음보살경(請觀世音菩薩經)이라고도 한다.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거부(大巨富) 월개장자(月蓋長者)의 욕심
이 경전은 석가세존이 계시던 동인도 비사리성의 대거부인 월개장자의 청에 의하여 일광삼존불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따라 관세음보살이 업보중생을 구제하신다는 내용의 경전이다.
이 경에서 나오는 일광삼존불은 사람과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이셨기에 살아있는 부처님, 생불(生佛)이라고 전해진다.
이 일광삼존불이 오시게 된 연기는 석가세존 재세시에 대거부인 월개장자의 욕심이 지나침을 경계하시고자
불제자인 사리불과 교범파제 그리고 세존의 아들인 라훌라까지 월개장자의 집으로 탁발을 보냈으나
월개장자가 그 누구에게도 보시를 하지 않자, 세존께서는 좌우로 목련과 수보리와 아난, 라후라 등 많은 나한들을 거느리시고 직접 탁발에 나가셨는데,
문수보살과 미륵보살 등 여러 대보살들도 함께 수행 하였다.
월개장자는 석가세존께서 직접 집 앞까지 오시니 할 수 없이 유리그릇에 백미(白米)를 수북이 담아 세존이 들고 계신 발우에 부으려 하였다.
그 때 백미를 담은 유리그릇에 부처님의 광명이 비추어 백미가 전부 아름다운 보석으로 보이자,
갑자기 욕심이 생긴 월개장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백미그릇을 들고 성내 깊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월개장자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계시던 석가세존께서는 슬퍼하시며
“너를 구제하고자 함인데 스스로가 나의 구제의 그물에서 빠져나갔으니 앞으로 닥쳐올 무서운 업고(業苦)를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하시며 대림정사로 돌아가셨다.
천지신명(天地神明)과 호법신장(護法神將)들의 노여움
이런 모습을 본 천지신명을 위시하여 호법신장들이 분노하니 기회를 엿보던 악귀 신들이 질병의 신이 되어
월개장자의 성내로 난입하여 생명이 있는 모든 중생들을 닥치는 대로 병에 걸리게 하여 죽게 하였다.
이때 월개장자의 집으로 난입한 질병의 신들이 모여 상의하기를 월개장자의 악행이 멈추지 않는 것
딸 여시희 때문이니 여시희를 공격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다섯 가지의 열병과 고통을 집중적으로 퍼부어 병에 걸리게 하였다.
그러자 월개장자는 이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 기바(耆婆)를 불렀으나 그가 말하기를
“여시희의 병은 불법승 삼보를 무시하여 석가세존의 구제의 그물에서 벗어난 이유로 천지신명과 호법신장들의 노여움을 사
모든 질병의 악귀들이 여시희의 몸에 난입하여 발생한 자업자득의 병고이기에 인간의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가 버렸다.
방법이 없는 월개장자는 500명의 장자를 거느리고 석가세존을 찾아가 배례하고 진실하게 참회하면서 말하기를
“제가 아무리 대거부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자식의 생명 하나를 구하지 못하니 그까짓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까.
세존께서 이 불쌍한 중생의 참괴(慙愧)와 참회를 받아 주시어 여시희를 비롯하여 비사리 성내의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여 주시옵소서.“
라며 애원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너의 여식과 비사리성의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나에게 없다.
만약 너와 같이 악행에서 얻어지는 업보로 인한 병고와 업고를 내가 구제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업보에 의한 중생들의 질병을 어찌 내가 보고만 있겠느냐.
원래 이 세상에서는 만나면 반드시 이별해야 하고 생명이 있는 것들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도리이며 법칙이고 누구도 이 도리에서 벗어 날수 없다.
지금 여시희가 죽어가고 있는 것은 너희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도리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며,
부모의 욕심으로 인한 악행을 개심(改心)하도록 하여 불도에 입문하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저 여시희의 임종을 지켜보거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월개장자는 세존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엎드려 세존께 아뢰기를
“여시희의 죽음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제가 먼저 죽겠습니다.”라며 통곡을 멈추지 않았다.
그 때 세존께서는 월개장자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부처님의 전생담(前生談)을 말씀하셨다.
“내가 전생에 시비대왕(尸毘大王)으로 있을 때 비둘기를 대신하여 나의 살을 칼로 잘라 포수에게 준 일이 있고,
또 살타왕자(薩埵王子)로 태어났을 때는 배고픈 호랑이에게 나의 육신을 준 일도 있느니라.
이렇게 세세생생을 두고 오겁 동안 수행을 해왔기에 이 우주 산하대지에는 나의 희생이 없는 곳이 없느니라.
그러기에 그 공덕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서원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아미타부처님과 관음, 세지의 출현과 구제
"지금 너의 모습을 보니 진실로 참괴하며 참회하는 모습이 애처로우니
너의 여식과 성내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줄 것이니 잘 듣고 그대로 꼭 순종해야 하느니라.“
라고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여기에서 서쪽으로 십만 억 불국토를 지난 곳에 한 세계가 있는데 그곳을 극락이라고 한다.
그 나라에 계신 부처님께는 두 분의 제자가 있어 한 분은 관세음보살이고 또 한 분은 대세지보살이라 하며
지금도 그곳에서 설법을 하고 계신다.
그 부처님의 공덕이 무량하시어 그 부처님의 본원력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의 업보중생을 구제할 수 없느니라.
그러니 서쪽을 향하여 그 죄를 참회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일념으로 호칭하여 아미타불과 양대 보처보살인 관음 세지를 모신다면 너의 여식은 물론이요,
성내의 병고중생들이 질병으로부터 구제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월개장자 일행은 세존께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마음을 청정하게 한 후,
서쪽을 향하여 정성껏 등과 꽃과 향공양을 올리고 합장 정례하며 큰 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칭명하면서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 양대 보살을 청하는 발원을 올렸다.
그때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신 아미타여래께서는 이러한 월개장자의 심중을 헤아리시어
월개장자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거대한 체구를 일척오촌으로 축소하시어 왼손엔 도검인(刀劍印)을,
오른손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지니고 일순간에 집 서쪽 망루의 문 위에 출현하셨다.
그 순간 부처님의 양손과 전신에서 열두 가지의 대광명이 비사리 성내 전체를 순황금색으로 덮으니 천지가 황금색으로 변하였다.
숨을 곳이 없는 악마와 질병의 신들은 신통력을 상실하여 전부 소멸되었고
그 순간 질병의 신에 시달리며 고통으로 신음하던 모든 중생들의 고통이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 좌우에 계시던 관음 세지 양대보살도 거대한 몸을 일척으로 축소하여 출현하셨는데,
모두 반야범협인(般若梵篋印)을 지니시고 좌우 손바닥 안에는 진주약상자를 받쳐 들고 계셨다.
그 약상자를 버들가지에 매어 잠시 동안 공중으로 내돌리니 불가사의하게도 약상자 속에서 이슬과 안개와 같은 비가 내려 산천대지를 전부 적시었고,
그 비를 맞은 성안의 병고에 괴로워하던 중생들과 이미 죽은 중생들까지도 전부 소생하여 모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는데,
월개장자의 딸인 여시희도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게 되었다.
그러자 소생한 중생들이 일광삼존불 앞에 몰려들어 합장 배례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소리쳐 부르니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또한 월개장자의 가족을 위시한 500장자들도 다 같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환희신심의 염불을 멈추지 않았다.
업보중생의 구제를 청원
잠시 후 월개장자는 석가세존께 다가가서 사뢰기를 “지금 이곳에 오신 일광삼존불께서 지금 이대로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무시어
업보중생을 구제하도록 하여 주신다면 제가 저의 집에서 평생 모시고 시봉하면서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업장이 두텁고 수행한 바도 없는 저 같은 자가 어찌 부처님을 시봉할 바램을 갖겠습니까만,
원하옵건대 이 불쌍한 중생을 위하여 저의 청을 들어 주시옵소서.” 라고 청하였다.
이 말을 들으신 석가세존께서는 “참으로 기특한 발원이다. 너에게 착한 마음이 일어났음을 감축하노라.
그러나 그 청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염부단금(閻浮檀金)이라는 황금이 있어야 일광삼존불의 모습을 그대로 옮길 수 있으나
그 황금은 이 세상에 없고 용궁에 가야 얻을 수 있으니 목련이 사자(使者)로 가야 하겠구나.”라고 하시니
그 말을 들은 목련존자가 용궁으로 가서 용왕에게 염부단금 삼천칠백량을 얻어 석가세존께 바쳤다.
석존께서는 가지고 온 황금을 옥 바구니에 담아 받침대 위에 놓고 일광삼존불과 함께 황금을 향하여 일제히 광명을 놓으시니
황금은 그대로 녹아 일광삼존불의 모습 그대로 갖추어 새로운 일광삼존불이 탄생하였다.
잠시 후 본불이신 일광삼존불께서 신불(新佛)인 일광삼존불에게 다가오시어 머리를 세 번 쓰다듬으시니
신불(新佛)께서는 본불(本佛)에게 세 번 예배하였다.
그리고 두 분께서 똑같이 공중으로 날아 상공에 오르시며 광명을 놓으시더니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모습을 취하신 후 서쪽으로 날아가시었다.
이에 당황한 월개장자는 합장 배례하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큰 목소리로 외치었다.
“신불을 조성한 것은 이 세상의 본존불로서 머나먼 미래의 업보중생까지도 구제하기 위한 것인데
어찌하여 저의 소원을 묵살하시고 본국으로 돌아가십니까.“ 라며 애통해하였다.
그때 신불께서 선명한 목소리로 공중에서 말씀하시기를
”잠시만 기다리시오. 본불(本佛)을 배웅하고 꼭 돌아오겠소.“ 라고 하시고
얼마 후 돌아오시어 월개장자의 집 서쪽 망루의 문에 머무시었다.
월개장자는 매우 기뻐하며 가족들과 함께 칠보로 대가람(大伽藍)을 건립하여 신불이신 일광삼존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500명의 승려로 하여금 시봉토록 하였다.
그 후 월개장자는 아미타불의 48원을 신봉하면서 같은 이름으로 500년 동안 일곱 번을 윤회환생하면서 일광삼존불을 시봉하였다.
그러던 중 월개장자는 일광삼존불께 다시 발원하기를 “다음 생에는 국왕으로 태어나
48원을 더욱 신봉하면서 일광삼존불을 더욱 극진히 시봉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계신 곳에 인연이 다하였음을 아시고 일광삼존불께서는 월개장자의 발원을 들어 동쪽으로 이동하시면서
월개장자를 해동 한반도의 국왕으로 전생(轉生)도록 하시어 1112년간 동안 아홉 차례 국왕으로 환생하게 하여 일광삼존불을 시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인도에서 있을 때 발원한 월개장자가 국왕이 되어 보다 더 강건한 신심으로 지극히 시봉하겠다던 약속을 잊고
왕의 권세에 빠져 있음을 한탄하신 일광삼존불께서는 마지막 국왕으로 백제국의 성왕으로 환생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성왕인 월개장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국왕으로 전생을 원한 것은 나의 48원(본원)을 더욱 확고히 신봉하며
업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신념으로 시봉해야 하는데, 국왕의 권세에 취하여 천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것을 너는 알고 있느냐?”
하시며 경계하시니 성왕은 일광삼존불전에 참회하며 발원하기를 “부처님 말씀이 옳습니다.
다음 생에는 가난하여 생명부지가 힘든 천한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여
이 세상에 대해 권태와 싫증 그리고 허무와 무상을 느껴 정토왕생을 발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였다.
그 후 일광삼존불께서는 성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인도에서부터 너를 따라 동점(東漸)하여 한반도로 이동하여 인연이 있는 많은 업보중생을 구제했고
이제는 이곳과도 인연이 다 되어 새로운 인연이 있는 일본국으로 가야겠으니 나를 일본으로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셨다.
백제국의 왕실은 물론 대신들을 비롯하여 승려와 백성들까지도 모두 일광삼존불께서 백제를 떠나는 것을 슬퍼하며 만류하였으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인연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부처님 말씀에,
성왕은 사신을 구성하고 승려 2인에게 부처님을 시봉하도록 하여 서기 552년 10월에 일광삼존불을 일본으로 봉송토록 하였다.
서기 522년 10월 13일 일본에 도착하신 일광삼존불께서는 일본국 흠명천황의 영접을 받으며 천황 궁전에 봉안되었으나,
일본국 대신으로 있던 물부미흥(物部尾興)과 그 자식 수옥(水屋)이 불교를 사교(邪敎)라 배척하며 일광삼존불을 난파굴강에 버려 버렸다.
그리고 백제의 성왕은 일광삼존불을 일본으로 봉송한 이듬해 서기 533년에 붕어(崩御)하여
일본 신농국 이나군(信濃国 伊那郡)의 백제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에 천한 주민의 아들로 전생(轉生)하였는데
이름은 본전선광(本田善光)이라고 하였다.
선광은 부인과 선좌(善佐)라는 아들과 함께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근근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선광은 아들을 데리고 일본의 수도인 경도에 일을 하러 가게 되었다.
2년 동안의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경도를 구경하고자 난파굴강을 지나가는데 강 쪽에서
“선광아! 선광아!”하며 부르는 소리에 발길을 멈추었는데,
갑자기 번쩍하고 광채가 나면서 선광의 등에 업히더니 하는 말이 “놀라지 마라. 나는 너의 본존불이다.
백제에서 너와 헤어진 후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하였다. 그때가 서기 602년 4월 8일이었다고 한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일광삼존불과 선광은 대화가 멈추질 않았고,
그 길로 선광은 일광삼존불을 등에 업고 아들인 선좌와 함께 집으로 향하였다.
선광의 등에 업힌 일광삼존불께서는 선광에게 인도에서 있던 일과 백제국에서 있던 일들을 상세히 말씀하시며
“네가 인도에서는 월개장자였고 한반도에서는 백제의 성왕으로 전생하였는데
너의 원에 의하여 다시금 빈곤한 지금의 너로 전생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동안 고생도 많이 하였으니 이제는 정토왕생을 발원할 마음이 준비된 것 같으니
너와 마지막으로 너의 집에서 인연이 있는 업보중생을 구제하는 데 힘을 써야겠다.”라고 하셨다.
그 후 선광 부자는 집으로 모시어 일광삼존불을 지성으로 시봉하였으나
가난하여 본존불께 제대로 공양도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 항상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이 청결한 법당을 건립하여 그곳에 모시자고 하였으나,
본존불께서는 새로운 법당을 마다하시고 선광이 사는 악취가 심하고 지저분한 곳에 머물기를 원하셨다.
그러자 선광은 답답한 마음에 일광삼존불께 그 이유를 물으니 “아무리 청결한 곳이라도 염불소리가 없으니 그곳은 불결하기 짝이 없는 곳이고,
아무리 불결하고 악취가 심해도 염불소리가 그치지 않으면 이곳이 청결한 도량이니 내가 있을 곳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선광의 집에 머무르시는 것을 즐거워하셨다.
그 후 선광은 일광삼존불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절을 건립하고 선광사(善光寺)라 이름하니
지금까지 그 명칭이 현재까지 1400년 동안 전래되고 있는 것이다.
석가세존께서 설하신 『청관세음보살소복해다라니주경(請觀世音菩薩消伏毒害陀羅尼呪經)』에는
월개장자로 인하여 이 경전을 설하게 된 이유와 서방정토에 계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업보중생 구제를 비롯해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거하여 관세음보살이 활동하시는 여러 가지 모습을 설하였는데
『청관세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경』의 전후前後 이야기는 일본에 있는 선광사(善光寺)를 건립한 선광과 일광삼존불간의 대화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선광은 본존불을 시봉하다가 서기 671년 6월 13일 열반하여 극락왕생하였는데,
이때 일광삼존불께서도 본국(本國)인 극락으로 돌아가셨기에 지금은 말을 하지 않는 비불(祕佛)인 일광삼존불상으로 계시는 것이다.
- 효란스님 저 일광삼존불 유래 중에서 -